도전과 안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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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댓글 0건 조회 993회 작성일 2023-07-25 00:00도전과 안전 사이
『엘리멘탈』은 그 제목이나 핵심 콘셉트로부터 예상한 것과 달리 다양한 원소들의 이야기가 아닌 (이미 무수히 반복된 바 있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창의적 캐릭터 디자인과 각본이 유독 빼어났던 『인사이드 아웃』(2015)의 원소(element) 버전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영화가 담고 있는 여러 아기자기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분명 실망했을 터. 게다가 두 주인공의 관계를 가로막는 태생적 금지된 사랑은 일정 부분 엇비슷한 내러티브의 『주토피아』(2016)와 비교해도 이야기가 훨씬 평면적이라는 점에서 무척 아쉽다. 여기에 더해 미국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민자 가족 소재와 아시아인이 공감할 법한 부모 자식 사이 갈등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끌고 간 선택은 결국 영화 음악에도 스민 안전 지향 면모를 대변한다.
일차적으로 다채로운 질감의 사운드 조성에 심혈을 기울인 의도에는 동의한다. 의인화된 ‘공기’, ‘물’, ‘불’, ‘흙’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미국식 ‘문화 용광로’ 혹은 ‘샐러드 볼’을 은유하기에 여러 악기를 활용하는 것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심지어 각각의 영화 캐릭터가 특정 원소를 대변하기에, 캐릭터나 장면별 특징을 서로 다른 악기의 물성이나 질감으로 대응하여 표현하는 것만큼 논리적으로 적절해 보이는 방식은 없다. 비교적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운드의 비브라폰과 시타르부터 송 벨, 옥타브 만돌린, 타블라 드럼과 반수리 플루트 등 꽤 많은 수 악기를 두루 활용했지만 조금도 그것이 과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 세계의 현실을 참조하고 있지만 상상의 세계를 소리로 맥락화한다는 측면에서 최대한 구체적인 장르나 레퍼런스를 끌어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나름의 큰 도전이었을 거다. 음악을 맡은 토마스 뉴먼(Thomas Newman)은 이 도전 앞에서 (90편 넘는 영화에 참여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만 15차례 오른) 자신의 위대한 경력만큼이나 자신만만하기도, 반대로 이를 초월해 최대한 사려 깊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결과는 도전과 안전 사이 절묘한 지점이 아닌 애매모호한 지점에 정착했다. 사운드 및 편성의 볼륨 조율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텍스처의 강점이 충분한 빛을 발하지 못하는 탓이다. 편곡의 경우 나름 전형성을 잘 피했지만, 높은 비중으로 활용한 인도 고전 악기들의 일부 존재감이나 문득 드러나는 라가(rāga) 음계의 보컬 사운드가 구체적인 인상을 전제와 염두에 뒀다는 의심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러한 구상이 해당 장면의 캐릭터성과 부합하거나 아예 관계가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실제 이야기에 있어 아시아인에 대한 은유가 자주 드러나는 불의 민족의 경우 인도 외에도 동아시아 문화권, 특히 중국 문화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기에 엇박자를 이룬다는 게 문제다. (애초에 ‘엠버’(Ember Lumen) 역의 배우가 중국에서 입양된 배우이기도 하다.) 미묘한 스타일과 텍스처에 더 공을 들이다 보니, 막상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 테마 역시 직관적인 선율도, 유려한 프레이즈도 돋보이지 않는, 무난한 배경음악 스타일의 곡으로 남았다.
『엘리멘탈』의 음악이 나쁘다고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난 여전히 토마스 뉴먼을 사랑한다. 다른 문화권은 물론, 인도든 중동이든 관련 당사자들도 딱 잘라 구별하지 않을 아시아 음악의 영향이 처음 언급한 대로 여러 사운드 속 은은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덕분에, 이를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두 민족이 만나 스파크를 튀기는 온전히 신선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데 충분히 섬세한 팝일 수 있음을 인정하기도 한다. 다만 일부 스코어에서 그랬듯 이질적인 사운드를 오히려 뭉뚱그리고 반대편의 팝 재료를 핵심적이고 노골적으로 활용했다면 사운드트랙 전체가 더 흥미로웠을 거다. 아시아 사운드와 재즈 뉘앙스, 곡 안의 이원적인 구조가 도전적이고 노골적인 균형을 이루는 「Meet the Ripples」 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 그러나 엠버의 이국적인 면모나 특색이 강하게 발휘되는 영화 속 장면과 맞물려 위의 우려와 실패가 좀 더 진하게 우러난 「Sháshà r íshà」, 「Mineral Lake」 같은 곡으로 인해 뉴먼의 선택은 충분하지는 못했던 상상력을 드러내는 지점이자 순한 맛의 오리엔탈리즘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피터 가브리엘과 함께하며 『월-E』(2008)에서 들려줬던 「Down To Earth」(듣기)가 자신들에게 익숙한 언어를 바탕으로 신선한 하이파이 사운드를 곁들인 안전 속 도전의 좋은 예였다면, 이번 작업은 과감히 내딛고 본 도전 속 머문 안전의 아쉬운 예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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