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cemberists 「Once In My Life」 (2018) > 추천 영상

본문 바로가기

Watching

추천 영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현준 댓글 0건 조회 601회 작성일 2023-03-30 00:00

본문

The Decemberists 「Once In My Life」 (2018)

  • 김현준
  • 23-03-30 20:52

사내의 이름은 제이콥. 엄청난 거구의 그는 ‘너무나’ 큰 덩치 탓에 항상 놀림을 받으며 거북한 시선에 휩싸인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동네 식당에서도 사람들은 낄낄대며 대놓고 비웃음을 퍼붓는다. 그에게, 세상은 비좁다. 남들은 편히 앉는 자리도 그에겐 비좁고, 사람들의 마음도 너무 비좁아 그에겐 틈을 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평생 세상을 향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했던 제이콥은 오늘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묵직한 고난의 몸을 일으킨다. (역시 평생토록 짓눌린 채 살아왔을 것 같은 표정의) 식당 직원이 돈을 받으며 더 못 참겠다는 듯 용기를 내 한마디 건넨다. “사람들의 말, 신경 쓰지 말아요.” 


이 한 마디에 많은 게 담겼다. ‘괜찮아요.’ ‘저들이 잘못된 거예요.’ 혹은 ‘언제든 편히 와서 식사해요, 내가 있으니까.’ 고맙다는 뜻인지, 다른 이들처럼 늘 습관 삼아 그래왔던 것인지, 제이콥은 잔돈을 팁으로 남기며 식당 문을 나선다. 작지만 절실한 공감의 위로에 제이콥은 잠시 당황한다. 그러나 희미한 희망의 끈을 움켜쥔 채 그 자리에서 몸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내 신산한 도시의 밤거리로 뛰쳐나가 그만의 살풀이를 추어대는 제이콥. 나쁜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여인과 잔뜩 억눌린 표정의 동양계 남자를 만나 그 작은 위로의 불씨를 둘로, 셋으로 쪼개 함께 나눈다. 회한으로 가득한 이들에게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새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더 디셈버리스츠(The Decemberists)’. ‘12월주의자’나 ‘12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정도로 번역될 매력적인 이름의 이 밴드는,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들의 적잖은 주목을 받았던 존재란다. 2000년대에 발표된 몇몇 앨범들은 걸작의 반열에 오를 만큼 정말 대단하다. 틈이 날 때마다 그간 놓쳤던 다른 영역의 음악들을 찾아 듣는다. 본업이 재즈 비평인지라, 평소 의식적으로 꽤 노력하는데도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뒤늦은 발견이 그래서 더 반갑기도 하다. 19세기 미국 백인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포크의 영혼에 체임버 팝의 향취가 곳곳에 배어 있다. 오늘 소개하는 2018년의 「Once In My Life」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근년 들어서는 보편타당한 팝 사운드를 더해 음악성의 변화와 확장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상의 플롯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밴드의 리더인 콜린 멜로이(Colin Meloy)는 “노래에 어울릴 스토리가 필요했는데,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자기 오빠 제이콥의 사연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콜린 멜로이에게도 자폐증을 안고 살아가는 아들이 있단다. 여러모로 감정이입이 됐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Once In My Life」의 뮤직비디오는 영미권 음악 팬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모양이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제작됐다는 점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법하다. 아코디오니스트 제니 콘리(Jenny Conlee)에게서 비롯된 관심의 끈이 그녀가 소속된 더 디셈버리스츠로 이어졌고, 이 곡의 존재도 알게 됐다. 항상 귀를 열고 살아도, 세상엔 들어야 할 음악이 셀 수 없이 많이 남아 있다. 아니, 가슴을 열어 둔 덕에 그 음악이 들린다. 


곡의 가사는 영상의 흐름과 다소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좀 더 회한에 가깝다고나 할까. 내용은 매우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노래가 이어지면서 반복되는 가사는 이렇다. “살면서 한 번쯤, 단 한 번만이라도 뭔가 제대로 굴러갈 수는 없는 걸까. 평생을 기다렸는데, 내 한평생 늘 기다려왔는데.”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한결 힘을 뺀 목소리로 콜린 멜로이는 곡이 마무리될 즈음 이렇게 노래한다. “계속 기다릴 수 있어. 무너지지 않을 거야. 우리, 강가에 이 한 몸 눕힐 수 있다면.”


제이콥이 불쌍하다고 동정하지 말자.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섣불리 ‘좋아요’를 누르지도 말자. 우리 모두 어디 한군데 깊이 팬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나. 그걸 그냥 인정하기만 해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인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벗어날 가능성은 그나마 사라져버린다. 인정하지 않는 게, 그래서 가장 안쓰럽다. 0212834a95f9bd8874840e5e4663d565_1680177031_9341.jpg 


※ 이 곡만 전하는 게 아쉬워서 더 디셈버리스츠의 전성기 시절 곡들을 몇 개 더 남긴다.

「The Mariner's Revenge Song」 연주영상보기

「The Island」 연주영상보기(2021년의 밴드 결성 20주년 기념 공연 중에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