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 「그대 먼 곳에」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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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준 댓글 0건 조회 1,530회 작성일 2023-04-25 00:00본문
마음과 마음 「그대 먼 곳에」 (1985)
1985년 가을, 친구들은 나에게 “팝송대학을 갈 거냐”며 비아냥대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모두가 암기 과목의 책 한 줄이라도 더 들여다보던 고3 교실, 나는 미국에 이민 간 지인을 통해 어렵사리 손에 넣은 음악 관련 원서를 탐독하며 영어사전을 들추고 있었다. 아예 클래식 음악이면 모를까, 프로그레시브와 헤비메탈, 그리고 빽판을 통해 듣던 ECM 레이블만 음악이라 믿던 치기 어린 시절, 다소 이율배반적이지만 늘 흥얼대던 두 개의 멜로디가 있었다.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
훗날, 당대의 히트곡 「내게도 사랑이」가 음악적으로도 얼마나 위대한 명곡인지 깨달았다. 허를 찌르며 놀라운 분위기의 반전을 가져오는 곡 진행과 묘한 뉘앙스를 자아내는 그루브. 독자 중에서 혹시 이 곡을 아직 경청하지 않았던 이가 있다면, 바로 지금 검색창에 제목을 써넣고 엔터를 눌러보기 바란다.
1985년 강변가요제 대상의 영광을 거머쥔 「그대 먼 곳에」는 지금도 들을 때마다, 약간의 과장을 덧붙이면 소름까지 돋게 하는 어마어마한 노래다. 괜찮은 가사가 한 번에 귀에 꽂히는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역시 노래를 맡은 김복희의 목소리다. 곡은 함께한 마음과 마음의 동료가 쓴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녀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혹은 좋은 노래를 부를 기회가 더 주어졌거나 스스로 곡을 쓰는 능력을 겸비했다면, 흔히 하는 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디바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정황상 흑인음악에 대한 인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50대는 이 노래를 추억의 한 장면 정도로 회상하는 듯하지만, 나는 어떤 이유로 당대 음악계가 이 아름다운 목소리에 더 크고 중요한 무대를 선사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널리 잘 알려진 이 영상이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진, 후반 작업 없이 라이브로 송출된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확언하건대, 지금의 음악적 소양을 품고 현장에서 김복희의 라이브를 목격했다면, 그 도발적인 목소리에 전율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나는 김복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음악계에 남고 싶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뒷얘기가 아니라, 이렇듯 감탄할 목소리를 지녔어도 세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재즈 쪽으로 전향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이런 가정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부질없을 뿐이다.
KBS가 제작한 “7080 콘서트”에 간간이 출연하기도 했지만, 결국 김복희는 원-히트-원더에 머물렀다. 그래도 「그대 먼 곳에」 하나로 음악사의 한 줄에 자신의 이름은 적어넣었다. 세속적으로 화려하진 않았어도, 나는 그게 더 대단해 보인다. 자기 실력을 냉정히 바라보지 못한 채, 미천한 무개념의 시스템 덕에 어쩌다 주목받게 된 가수가 스스로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듯 착각한 채 라이브도 안되는 목소리로 무대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는 이 한심한 시대에, 다시 듣는 김복희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참 고맙다, 생전에 이런 소리를 듣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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