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바이 #33 자유 즉흥 연주 (김예지 @중력장, 2024년 7월 19일) > 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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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댓글 0건 조회 864회 작성일 202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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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바이 #33 자유 즉흥 연주 (김예지 @중력장, 2024년 7월 19일)

  • 정병욱
  • 24-08-12 14:49

이날의 공연은 해금(김예지), 그랜드 피아노(김은영), 베이스(조민기), 일렉 기타(중원)라는 ‘범-현악기’(피아노를 타현악기로 인지할 때)라는 조합과 이들이 각기 주도권을 옮겨간다는 최소한의 약속만을 바탕으로 네 연주자가 펼친 자유 즉흥 무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성으로 출발해 편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공연이었다. 음악에 자유 즉흥과 아방가르드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역사가 벌써 반세기가 넘은 만큼 그것의 양태는 이미 넘칠 만큼 다양하고, 완전히 새로운 무대란 존재하기 힘들다. 해당 공연 역시 각 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러닝타임 약 55분 동안 각 악기가 돌아가며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주법을 바꿔가며 빼곡하게 전시한 연주 파편은 프리재즈나 현대예술 팬들이 보기에 충분히 익숙한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편성과 진행의 확고한 방향성, 네 연주자의 능숙하고 절묘한 드나듦이 짜임새 높은 재미와 신선한 울림을 준 무대이기도 했다. 


악기를 먼저 생각해보자. 현악기는 물리적으로 마찰, 타격, 혹은 다양한 핑거링을 통해 소리를 내는 악기다. 다른 악기류에 비해 다양해 보이지만 그 속에도 분명 제한과 제약이 있기에 시시각각 다른 소리를 연출하기 위해 치밀한 계산 혹은 치열한 직관을 발휘하는 것만으로 흥미로운 미학 실험이 된다. 특히 현의 진동만이 아니라 그것이 악기 몸체를 거쳐 증폭되는 과정, (해당 무대 위 악기들의) 저마다 다른 몸체 크기, 현의 길이, 개수, 두께, 장력에 따라 제각기 진동이 다르게 작용하는 특성 덕분에 상대적으로 청자에게 더욱 풍성한 경험을 줄 수 있다. 사람의 연주로 다 제어할 수 없는 현의 미세한 떨림은 매우 세밀한 감정과 감각의 뉘앙스를 표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선율과 리듬, (악기에 따라 자유롭거나 제한된) 화성을 모두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강력한 강점이 있어, 이를 적재적소에 내세운 네 사람의 호흡은 누구도 섣불리 유일한 주연으로 올라서거나 조연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했다.

 

말하자면, 넓고 섬세한 표현 영역과 별개로 자연스럽게 분배된 역할과 제한된 가능성이 이 공연의 색을 완성했다. 이를테면 울림과 이펙트를 최대한 절제한 일렉 기타의 앰비언스가 은은하게 배경 분위기를 깔고, 피아노는 묵직하게, 해금은 날카롭고 날렵하게 번갈아 주도적인 인상을 덧대며, 이따금 베이스가 묵직하고 명징하게 튀어나오며 리듬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일찍이 다채로운 작업과 시도로 자신의 연주 외의 기지와 아이디어까지 두루 갖춘 김예지의 기획과 조율로 완성된 무대다. 함께한 김은영과 조민기는 비평에서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진작에 받았어야 마땅한 훌륭한 즉흥 연주자들이고, 중원의 경우 강렬한 인상의 앰비언트 사운드를 누구보다 잘 구사할 수 있는데도 이 공연에서 힘을 통제했다. 근래 즉흥 실험에 자주 등장하는 AI 기반의 인터랙티브 기법, 비주얼 협업, 특징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 연출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롯이 네 악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우직한 방식으로 ‘네 사람의 동시 공동 창작’이라는 단일한 서사의 밀도를 높였다. 난해한 현대음악 뉘앙스도, 화려하고 시원한 라인도, 미묘하고 으스스한 영화 스코어 같은 공간감도 결국 네 사람의 연주로 귀결되는 매우 균형 있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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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국악기를 더한 재즈 편성 혹은 즉흥 무대는 적은 기회나마 재단과 기관 주도 지원 사업을 겨냥한 필요충분의 경향이나 활로 모색의 카드처럼 비쳤다. 지난해부터 ‘한국 즉흥 음악 축제’ 등 전에 없던 무대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전체 규모로는 재작년보다 작년, 작년보다 올해, 기관과 재단 주도 지원 사업이 더 줄어들고, 예술가들의 자생이 갈수록 더 위협받는 상황 가운데, 오히려 공간과 기획자, 예술가들 주도의 도전적인 자체 협업이 최근 더욱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자유 즉흥 음악은 대개 두 가지 오해 혹은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것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담론 위주이며, 표현 및 형식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과 지극히 제한적인 영역과 장르로 발전해왔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즉흥 음악이 아닌 음악, 완성된 악보를 재현하는 주류 음악의 형태가 훨씬 무수하게 만들어져 온 (주로) 지난 200년가량의 음악사가 만든 의식에 근거한다. 작곡과 연주가 동시에 일어나고, 그에 맞춰 복수의 음악가들이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각각의 인지와 연주 기량을 극대화하며,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아우르는 창의적 모색에는 익숙해지면 해질수록 보이는 미학적 풍경들이 있다. 물론 음악가의 구상이 분명하다면 난해함은 한결 상쇄된다. 게다가 AI 작곡의 역량과 영역이 비대해질수록, 작곡과 연주 모두 순수한 인간성을 눈앞에서 담보하는 즉흥 무대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연주자 개인의 작곡, 연주 기량이 고도로 숙련되어야 하는 것과 별개로 함께하는 이들의 호흡과 소통도 함께 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대부분의 즉흥 무대가 그렇듯 이날의 콘셉트는 전에도 앞으로도 유일하지 않지만, 똑같은 무대는 다시 없다. 편성으로부터 출발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로운 균형으로 나아간 이 무대 다음 버전의 탐구와 균형이 한편으로 더 궁금한 까닭이다. 975825640a2f58aa204a0c54d6e06d50_1723441726_31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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