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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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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댓글 0건 조회 861회 작성일 202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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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 (신예훈 작곡 발표회 @호원아트홀, 2024년 11월 16일)

  • 정병욱
  • 24-12-31 10:54

음악으로 존재하기


음악가

‘음악가’라는 단어는 활동 범위와 정체성을 논할 때마다 넓고도 좁은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는 연주, 작곡 등 대표하는 행위의 범주를 통해 단어를 정의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행위 주체의 실질적인 음악성 내지는 활동, 태도 등을 바탕으로 자격을 가늠할 수도 있다. 이중에 연주나 작품만으로 음악가를 규정하는 시각은 오늘의 음악산업에서 좁은 틀로 보일 수 있다. 동시대를 지배하는 주류 음악의 실천의 경우 크게 라이브 연주에서 작품(주로 레코딩(recordings))으로, 작품에서 엔터테이닝으로, 엔터테이닝에서 일종의 팬-게이징(fan-gazing)이나 커뮤니티 엔터테이닝으로 변화해온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도, 소위 음악가로 우리가 부르고 인정하는 이들은 여전히 연주와 작품에 주목한다. 그것이 거대한 산업의 일부가 아닌, 한 개인의 예술 실천이자 창의성 발현으로써 여전히 유효한 문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작곡가 신예훈의 리사이틀 -ist는 음악의 주체성과 예술적 실험을 탐구하며 스스로와 관객에게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무대였다.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와 사유로부터 출발했다. 스스로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던 작곡가와 연주자의 경계, 이후 다양한 공부와 과업, 공연과 전시 형태의 작품을 거치며 경험한 클래식 음악, 국악, 전자음악, 미디어아트의 영역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정체성을 탐구했다. 동시에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음악의 예술성은 어디로부터 출발해 어디까지 확장하는가? 익숙한 장르 미학이나 청각의 즐거움 너머 소리가 지닌 갖가지 물리적 속성, 감각 바깥에 있는 감각을 실험하는 경험은, 음악의 행위와 주체가 아닌, 반대로 음악의 감상이나 청자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숨, 소리, 시간의 예술

기본적으로 음악은 소리와 시간의 예술이다. 어떤 소리로 어떻게 시간을 채우는지가 미학의 주요 관심사다. 공연의 전반부는 관악기 솔로곡으로 채워졌다. 인류 역사 최초의 악기였을 타악기나 다른 악기족보다 더욱 정교한 표현이 가능한 현악기 대신 관악기를 앞세우는 건 분명 그만의 의미를 발생시킨다. 관악기의 음색은 인간의 호흡과 밀접히 연관됨으로써 원초적이고도 숭고한 미감을 불러일으킨다.

클라리넷 독주곡인 첫 곡 Prelude는 악기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짧은 곡이기에 단순히 실험적 소품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전체 공연의 주제를 열기에 적합했다. 익숙한 음의 나열을 통해 전형적인 멜로디나 진행을 만들지 않고, 숨이 새는 소리를 내거나 일반 취주부가 아닌 악기의 소리구멍을 부는 등의 낯선 연주 방식을 차분히 펼쳐 보이며 소리와 침묵이 번갈아 있는 시간을, 숨의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시간으로 완성했다.

네 번째 곡 풍경 no.3부터는 관악기 연주 배경에 신예훈이 다루는 또 다른 주요 영역 중 하나인 일렉트로닉스가 본격적으로 곁들여진다. 이때 신예훈은 관악기 소리를 실험적 사운드스케이프를 강조한 앰비언트 성향의 전자음악과 함께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숨을 현재 기술의 범주로 편입시킨다. Eb 클라리넷과 비슷한 음색을 지니고, 서양 관악기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플루트와 유사한 주법을 가졌으나 막상 특징적으로 높은 음역 탓에, 한동안 가볍고 도구적으로만 활용되다 현대에 이르러 그 서정성이 발굴된 피콜로의 시간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는 클라리넷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양하게 동원한 다음 곡인 정물화 (Still Life)에서 비슷하고도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가상악기 기술이 날로 정교해지는 오늘의 시대에, 기존 악기의 가능성을 전통적이면서도 도전적으로 파고들어 소리와 시간의 층위를 다각화했다.


맥락의 재구성

전통과 현대는 상반된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전통이 예부터 이어져 오는 관습이나 양식으로서 연결성을 내포한 흐름이자 선에 가깝다면, 현대는 지금 시대를 특정해 의미하기에 선보다 넓은 영역의 점에 가깝다. 두 개념은 층위가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전통은 현대에, 현대는 전통에 얼마든지 포함되기도 하는 것이다. 고전은 지난 세월 동안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나 그것의 양식적 면모를 포괄해 전통과 의미를 공유한다. 맥락(脈絡)은 줄기(脈) 그리고 얽음과 이음(絡)을 뜻한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것들이 엮이고 이어짐으로써 의미를 발생시킨다. 시대성을 담은 양식과 의미, 가치는 다수의 사람들과 문화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이를 관통하고 개별 맥락을 만드는 건 한 사람의 음악가를 거쳐 가능하기도 하다.

신예훈의 시도는 어느 한편에 적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평한 맥락을 갖는다. 동시대에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전통과 현대적인 어법을 다중 관점에서 자유롭게 뒤섞는다. 윤이상의 피리(1971)에서 영향을 받은 두 번째 곡 「Allegro ma non troppo가 대표적이다. 피리는 오보에 독주를 위한 작품이지만 한국 전통악기인 피리를 연상시키는 주법과 이를 통한 소리 연출을 통해 한국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상호작용을 보여준 작품. Allegro ma non troppo의 경우 서양 고전 양식의 소나타 형식을 현대음악 뉘앙스로 인용하여 색다른 시각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각보를 기우다 문득 바라본 밤하늘엔에는 서양 고전과 한국 전통, 현대 어법을 모두 경험한 신예훈의 아이디어와 방법론이 맥락을 완성한다. 전통 음악을 현대에 소화함에 있어 그 소재로 자주 간과하는 정악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콘셉트와 무관하게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곡이었던 듯한 흐름이, 자투리 천 조각을 이어 붙였다는 정체성 외에 각 조각이 각 결을 따라 정갈하게 맞물린 조각보의 미학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포스트 뮤직, 포스트 뮤지션

공연의 후반부로 접어들며 무대는 더욱 다감각화 된다. 여섯 번째 무대인 도달부터 후면 스크린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소리의 추상성을 최대한 구상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번 무대에서 거문고와 가야금으로 편성한 Adagietto가 두 악기의 특성과 표현력이 잘 시각화 된 사례다. 우리 역사 오래 전부터 대중의 인식 속 전통 발현악기로 함께 잘 묶여온, 그러나 막상 잘 드러나 있지 않던 두 악기의 차이를, 국악기와 전자음악의 음색과 질감이 공존하는 순간을 마치 물살과 불길이 충돌하는 듯한 직관적 이미지로 묘사했다.

공연과 상영이 동시 진행된 2부의 무대는, 음악과 화면 모두 그 주인공이 인간과 악기를 벗어나 있다. 영상을 투사하는 대형 스크림(scrim) 뒤로 신예훈이 직접 (장르적으로 IDM에 가까운) 일렉트로닉스를 연주하지만 화면과 인간이 불투명한 겹쳐진 이미지 속에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기계라는 이분법 경계는 무화된다. 그는 Tomato에서 언어를 해체하기도 하고, 최초의 상업용 순수 전자음악으로 기록된 Silver Apples of the Moon(1967)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_)Apple_&_(_)Cheese으로 역사와 상징을 비틀기도 한다. 비구상적 구성 (Non-Objective Composition)은 고장난 신시사이저의 소리를 녹음해, 절대적 추상에 가까운 노이즈를, 실재하는 이미지를 왜곡한 듯한 비구상적 화면과 절묘하게 조합했다.

‘포스트 모던’이라고 불리는 문화예술사의 전위적 시도가 이어지고, 음악의 비음계적, 비서사적 미학이 나름의 도전을 거듭한 지도 벌써 반 세기가 넘었다. 자연스레 증강현실, AI, 로봇 등 오늘의 기술과 관심에 부합하는 첨단의 방법론과 토대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앞서 전통과 현대의 개념에 관한 이해에도 드러나듯 전통의 물음과 노력은 지금에도 되풀이된다. 신예훈의 이번 공연에도 이어진, 단순히 귀에 들리는 피상적 감각이 아니라 경험과 몰입으로의 음악, 기존의 데이터와 알고리즘, 유행이 만든 양식이 아니라 지금도 그 의미가 어딘가 숨겨져 있는 양식을 발견하는 음악이 그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이 더 흘러도, 사람이 만드는 음악과 인간으로서 음악가 너머에 지금과 완전히 다른 무엇이 있을 거라고 나는 예상하지 않는다.


작곡 = 연주 = 존재 = 질문

대중음악 역사에서 작곡과 연주가 분리되지 않고 공존함으로써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던 대표적인 음악 장르는 프리 재즈일 것이다. 어떤 사전 작곡과 약속도 없음을 유일한 전제로 이루어지는 자유 즉흥은, 오롯이 작곡과 연주가 동시에 발생함으로써 음악가의 역량과 청자의 집중력을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비록 절대 다수를 공감하게 하거나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비밥만으로는 미학적 발전의 한계에 봉착한 재즈의 흐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다른 어떤 현대음악보다 다양한 결합과 변형을 낳았다. 즉흥성은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유독 감상과 해석이 어려워 음악가와 청자의 소통이 불완전한 즉흥 예술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좁게는 한 음악가 개인이 이전까지 쌓아온 직관을 신뢰함을 의미하며, 넓게는 음악에 있어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존중과도 연결된다.

2016년, 이세돌이 알파고에 거둔 승리 이후 인간이 더는 AI를 이길 수 없어도, 사람이 두는 바둑은 여전히 살아 숨쉬며 오히려 분야를 발전시키고 있다.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완벽히 새로운 작곡을 하고, 로봇이 누구보다 감동적인 연주를 할 수 있는 순간에도, 인간의 음악은 남아 있을 것이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악흥의 순간 (Moments musicaux)은 즉흥 연주의 방식을 오디오비주얼에 적용한 실험이다. 3D 오브제의 빛의 즉흥적인 변화 움직임을 사후 작곡한 음악으로 풀어냈다. 여기서 ‘악흥’이 빛날 수 있는 건 기계와 인간이 소통 불가능성에 있다. 만일 기계와 인간이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그저 기계의 즉흥에 인간이 해설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파악 불가능한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와 몰입이 예술을 예술로, 예술가를 예술가로 존재하게 한다.

-ist에 공개한 신예훈의 작품들은 소리와 침묵, 악기의 가능성, 전통과 현대, 시각과 청각, 기계와 인간 사이 맥락을 찾는 탐구의 여정을 다룬다. 그는 다양한 악기 연주자의 지칭에 붙는 접미사 ‘ist’를 떠올려 다양한 역할 주체로서의 음악가를 그리고자 했다.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장을 나오며 공연 포스터 속 제목을 보는 순간, 독일어의 동사 ‘ist’가 떠올랐다. 영어의 be동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주어의 존재나 상태를 나타내는 3인칭 단수 동사 ‘ist’는, 작곡가와 악기 연주자 이면의 가능성을 풍성하게 내포한다. 연주와 작곡이라는 전통을 이으면서도, 무한한 질문을 품은 오늘과 내일의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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