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조 가드너는 자신의 첫 앨범을 완성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현준 댓글 0건 조회 963회 작성일 2022-09-18 00:00본문
그렇게 조 가드너는 자신의 첫 앨범을 완성한다
장면 하나. 색소포니스트 크리스 포터(Chris Potter)는 많은 이들의 지지 속에 2000년대 이후 재즈계를 이끌어온 핵심 인물 중 하나다. 작년 10월, 그는 코로나19 탓에 밀려든 막막함을 견디지 못하고 후배들과 함께 뉴욕 센트럴파크로 나가 무작정 길거리 공연을 벌였다. 연주 장면을 담은 사진이 세간에 퍼졌다. 그의 심정을 아는 동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장면 둘. 지난 연말, 베이시스트 데즈론 더글러스(Dezron Douglas)와 하피스트 브랜디 영거(Brandee Younger)가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녹음한 『Force Majeure(불가항력)』로 현지 매체와 마니아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좋게 말해 날것, 냉정히 보면 열악한 사운드로 가득했던 그 앨범은 오늘날 재즈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고 아름답게 담아냈다.
영화 『소울』에 대한 원고를 부탁하는 씨네21의 연락을 받았을 때 사실 나는 이 글쓰기를 거절할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재즈가 소재로 활용된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고백건대 이건 피해의식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재즈의 고향인 미국에서조차 다른 매체나 예술이 담아낸 재즈의 외양은 왜곡과 몰이해로 덧씌워있을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화를 본 뒤 결정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비평가들의 반응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훌륭했다. 세대를 초월해 깊고 풍부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서사와 수려한 영상. 그리고 적당한 선에서 활용한 미국식 유머도 글로벌 흥행에 좋은 영향을 줄 법했다. 작년 여름의 영화가 이제야 우리 스크린에 걸린 것도 그렇지만,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상적인 개봉이 진행되지 못했다는 건 안타까운 사실이다. 음악은 어땠나.
1990년대 인더스트리얼 록의 기치를 높인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출신으로 이젠 영상 음악에 몰두 중인 트랜트 레즈너(Trent Reznor)와 애티커스 로스(Atticus Ross)가 한 축을 맡았다. 그리고 재즈와 흑인음악 계열의 사운드트랙은 토크쇼 하우스 밴드의 리더로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존 배티스트(Jon Batiste)가 담당했다. 현실을 그린 장면에선 재즈가, 영적 세계를 그린 장면에선 미니멀한 전자음악이 흐른다. 대비의 효율을 높인 좋은 접근으로 봤다.
하지만 연주 장면에 사용된 음악의 디테일은 아쉬웠다. 우선 작업을 맡은 존 배티스트의 음악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뛰어난 음악인이자 엔터테이너지만, 재즈보다 소울 등의 흑인음악에 더 적합한 연주를 선보여왔다. 그 때문인지, 몇몇 핵심적인 장면에서 흘러나온 피아노 연주의 톤은 불편하게 들렸다.
선택일 수 있다. 재즈는 1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변천을 거듭했고, 어떤 태도와 지향을 지녔는지에 따라 연주자 개개인이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이룰 만큼 개성과 독창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운다. 그런데도 이 부분을 간과할 수 없었던 건, 영화의 주인공인 조 가드너에게 설정된 음악적 정체성 때문이다.
조 가드너의 피아노는 훨씬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했다.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의 곡을 휴대전화 벨소리로 사용하는 그가 수업 시간에 꺼낸 이야기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음악적 태도, 그리고 또 다른 극 중 인물인 알토 색소포니스트 도로시아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생각했을 때 그 톤은 음악적으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도로시아가 실존했다면 과연 조 가드너에게 오케이 사인을 주었을까. 더구나 코로나19 이전의 뉴욕에선 전화 몇 통만으로도 자신에게 맞는 피아니스트를 한 시간에 10여 명은 불러모을 수 있었을 테니까.
도로시아와 협연하는 장면의 음악과 엔딩 크레딧의 배경으로 흐른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 원작의 「It’s All Right」을 비교해 보자. 그 공연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동료들은 조 가드너에게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연주에 임하자’고 강권했을 것이다. 존 배티스트의 개성과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은 바로 「It’s All Right」이다. 공연 장면에서 연주된 곡들(의 편곡)은 지극히 전통적인 재즈, 이 따스한 힐링의 노래는 팝의 성향을 흡수한 소울이다.
톤은 아주 많은 걸 알려 주는 핵심 유전자다. 음악적 지향과 미학은 물론이고 연주했을 때 어떤 심리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도 짚어내게 한다. 조 가드너가 품고 있던 재즈에 대한 근본주의적 시각과 달리 존 배티스트는 대중적이고 수정주의적인 음악성을 지녔다. 조 가드너란 인물을 그렇게 그렸음에도, 왜 제작진은 많은 정통 재즈인들을 제쳐두고 존 배티스트에게 작업을 맡겼을까. 그의 넓은 음악 영역과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 끌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이 영화의 성과를 깎아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피아노 톤 ‘따위’는 재즈인에게만 주어진 작은 ‘불꽃’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영화가 전체관람가였기 때문인지, 작품의 교훈이 비교적 빨리 드러났다는 점은 긴장을 너무 쉽게 풀어버린 듯해 다소 아쉬웠다. 어른들은 동의하겠지만, 얘기가 영적 세계로 이어지고 어린 영혼들이 불꽃을 배정받는 과정에 이르러 이미 그 결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중한 ‘재즈의 진리’ 하나를 대입하며 영화의 후반부를 감상했다.
재즈는 과정의 음악이다. 종종 유행성이 강한 대중예술에서 엿보이는, 몇몇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행태는 재즈에서 잘 통하지 않는다. 흔히 이 음악에 대해 즉흥성의 가치를 높이 사지만, 진정 아름다운 즉흥은 오랜 세월 같은 음을 수없이 눌러가며 축적한 삶 자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코로나19로 그 접근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지만, 지난 100여 년간 재즈는 라이브에서 펼친 한두 개의 음만으로도 성패가 갈리는, 참 예민한 음악이었다. 그 음 몇 개를 순간적으로 택할 수 있는 재능이 ‘불꽃’일 수 있다. 실제 많은 연주자가 그걸 거머쥐기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과 정성을 쏟아붓는다. 삶을 모두 바쳐도 이루지 못하는 이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재즈를 택한 이상 그저 그 길을 갈 뿐이란 얘기다.
영화는 솔로의 행위를 무아지경의 단계로 규정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그 수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불꽃은 궁극의 종착점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불꽃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라던 제리의 말을,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곱씹는 중이다.
『소울』의 시간적 배경은 2019년 가을이었을 법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의 양복 대신 평상시 차림으로 대문을 나선 조 가드너는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코로나19로 불안감이 엄습했던 2020년 초, 도로시아 윌리엄스 쿼텟의 유럽 투어가 전면 취소됐다. 딱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조 가드너는 결국 정규직 교사의 길을 택했다. 어머니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여느 재즈인들과 달리 그는 안정된 삶을 꾸렸다. 우울하기 그지없던 2020년 크리스마스, 조 가드너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곡들을 드디어 완성했다.
바이러스의 기세가 수그러든 2021년 여름, 뉴욕의 한 오래된 스튜디오. 조 가드너와 함께 녹음에 임하는 건 도로시아가 아닌 그의 학생들이다. 코니의 트롬본 솔로가 역시 빛을 발한다. 옛 제자인 드러머 컬리가 말했듯이, 조 가드너는 참 좋은 선생이다. 40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만들게 된 첫 앨범의 타이틀은 『Maple Seed(단풍나무 씨앗)』.
(2021년)
ps. 2021년에 코로나19가 잠잠해질 것이란 예상은 순전히 막연한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우리 모두 겪었듯이.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