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edith d’Ambrosio 『Sometime Ago』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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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준 댓글 0건 조회 687회 작성일 2022-10-05 00:00Meredith d’Ambrosio 『Sometime Ago』 (2021년)
아마도 당신이 몰랐을,
그러나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이 아름다운 팔순의 생애
1966년, 존 콜트레인은 일본 투어를 준비하며 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동행을 권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스스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누구든 억지로라도 움켜쥐었을 큰 기회를 그래서 포기했다. 주인공은 메레디스 댐브로시오(1941~). 세속적으로 화려하진 않았으나 매우 깊고 안정적인 음악성을 선보이며 마니아들만 기억하는 보컬리스트이자 화가(!)로 평생을 살았다. 피아노 연주도 쉬진 않았다. 그래도 노래로 더 기억할 만하다. 말년에 여러 차례 내한하여 따스한 연주를 들려주었던 피아니스트 에디 히긴스(1932~2009)의 부인이다.
메레디스 댐브로시오가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존 콜트레인과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녀가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의 존재감도 상업성과 거리가 멀었다. 평소 많은 글로 음악적 소견을 피력해온 피아니스트 이선 아이버슨은, 얼마 전 재즈타임즈(Jazztimes)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 대선배를 극찬하면서도 스타일에 따른 그녀의 위상이 어떠한지 냉정히 진단했다. “사실 그녀는 일반적인 재즈 팬들을 위한 존재라고 보기 힘들다. 음악적으로 취향이 맞는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선택의 시간이다. 당신은, 풍부한 성량으로 1,000석짜리 공연장에서 PA 없이도 모든 공간을 쩌렁쩌렁 울릴 수 있는 (음악평론가 김윤하의 표현을 빌려) ‘성대 배틀’의 승자를 원하는가. 아니면 소규모 클럽에서 들었을 때 더 매력적인, 뱉는 소리보다 숨결 자체에 핵심이 담긴 노래를 선호하는가. 지향이 전자라면 재즈를 통해 맛볼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재즈가 작은 공간에만 어울린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면의 뉘앙스를 즐길 수 있을 때 이 음악은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안긴다.
메레디스 댐브로시오는 후자다. 그녀는 한 번도 ‘내질러야 제맛’인 곡을 부르지 않았다. 점점이 번져가는 파스텔 톤의 비음으로 관능미를 연출하지도 않았다. 오랜 연습을 통해 엮은 스캣으로 테크닉을 과시한 적은 더더욱 없다. 파삭거릴 만큼 건조하며, 목청만 갖고 간간이 흘려내는 비브라토는 애처롭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 꽂히면 그 마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의 강한 흡입력으로 소수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다.
10년 만에 발표된 17번째 리더작 『Sometime Ago』 또한 이러한 메레디스 댐브로시오의 독특한 매력을 고스란히 선보인다. 전작은 꽤 오랜만에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한 솔로 프로젝트 『By Myself』였다. 사실 세월의 위력을 잘 아는 세인들은 그녀에게서 더 이상의 작품을 기대하지 못했다. 『Sometime Ago』는 마치 기분 좋은 덤 같다. 묵묵히 다가와 나도 모르는 새 폐부를 쿡쿡 찔러대던 과거의 작품들에 비해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평가 또한 그녀에게 들이댄 잣대의 수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메레디스 댐브로시오의 음악을 (처음) 마주하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권언. 첫째, 높은 음역에서 흐트러지는 목소리에 기술력의 부재를 떠올리지 말자. 테크닉도 선택이다. 자기 소리의 장단점을 올곧게 인식하는 게 먼저다. 둘째, 단어를, 프레이즈를, 문장의 흐름을 어떻게 운용하며 ‘자신만의 스윙 필’을 찾아냈는지 관찰하자. 생각 없이 듣다 보면 그저 물 흐르듯 이어지는 듯하지만, 그녀의 호흡은 매우 특징적이다. 평소 어떤 억양과 아티큘레이션으로 ‘말’하는지 무척 궁금하다. 이것이 나이를 거스른 노하우의 하나로 보인다. 셋째, 가사를 듣자. 그녀는 탁월한 스토리텔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던 노랫말도 그녀가 부르면 다른 이야기처럼 들린다.
메레디스 댐브로시오의 노래는, 그녀가 그린 앨범 재킷의 그림들과 아주 많이 닮았다. 양식적으로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애쓴 쪽은 아니다. 그러나 차분히 다가오는 이미지에서 꽤 많은 걸 떠올리게 된다. 저 집에 사는 이들은 어떤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세월을 눅였을까. 팔순의 순간이 허락되면 우리도 저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사실인즉슨, 그녀는 (나이 들어 변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응시하는 바로 저런 스타일의 그림을 평생 그렸다. 그게 자신에게 맞는 삶이라 판단했고, 주어진 것을 만끽하며 살았다.
수십 년간 메레디스 댐브로시오의 모든 앨범은 써니사이드 레이블에서 유통됐다. 이젠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인터넷에서 단 몇 번의 클릭만으로 그 곡들을 빠짐없이 모두 들을 수 있다. 좋은 세상인가. 아니다. 몸 붙이고 앉아 잡념 없이 귀 기울여야만 공감할 수 있는 노래들. 그래서 더 힘든 세상이다.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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