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재즈 『어른이』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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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준 댓글 0건 조회 649회 작성일 2022-10-08 00:00경기남부재즈 『어른이』 (2021년)
안나의 반려인을 위한 공개 변론
처음 경기남부재즈의 공연을 마주한 건 2019년 초, EBS 스페이스 공감의 녹화 현장에서였다. 나는 그 프로그램의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음악은, 원숙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도발적이어서 통쾌했다. 불과 2년여 전이었을 뿐인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우리가 ‘버텨온 꼴’이 참으로 ‘스펙터클’했던 모양이다. 호불호가 갈렸다. 재즈라 부를 수 있는지 의아해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보컬리스트 임태웅은 사석에서 왜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었는지 물었다. 내 답은 짧고 명료했다. “달라서.”
그랬던 경기남부재즈가 세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2018년 여름에 데뷔했으니 다작이다. 타이틀은 『어른이』. ‘어린이’에 대한 상대적 표현으로 보인다.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란 부제도 붙였다. 앨범 재킷의 (임태웅의 어린 시절로 보이는) 아기의 표정이 가관이다. 뭐가 불만이었는지 잔뜩 찌푸린 미간. 사진의 선택도 의도적이었을 거라 본다.
경기남부재즈의 음악은 전통의 시각에서 재즈가 아니다. 전보다 원류에서 더 멀어졌고, 이젠 아예 록이라 쓰는 게 타당해 보인다. 이들은 레퍼런스를 떠올리기 힘들 만큼 누구와도 닮지 않은 스타일을 선보인다. 곡은 재즈적으로 풀어가지만 뉘앙스와 비트는 록이고, 민속적이거나 사이키델릭에 가까운 질감의 사운드를 동원할 때도 많다. 그렇다고 (이젠 특정 스타일을 지칭하는) ‘재즈 록’이나 ‘퓨전’을 거론하는 건 더 맞지 않는다. 임태웅과 기타리스트 김수유, 베이시스트 오원석, 드러머 김경민이 그동안 팀을 이뤘고, 앨범 발표 뒤 한인집이 새 드러머로 영입됐다. 모두 재즈를 공부했으나 다른 장르에도 능하다.
그런데도 경기남부재즈는 본인들의 음악이 재즈라 주장한다. 일종의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읽어낸 태도는, 재즈가 아니더라도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사람 마음이지’하는 투다. 『어른이』는 그간 이들이 담아냈던 정서와 내러티브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배설, 야유, 자조(自嘲), 자위. 이건 그들에게 설정이 아닌 현실의 직접적인 반영이다. 나는 그런 태도를 취한 ‘깡다구’에 점수를 준다. 똑같이 당혹해하면서도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교수님들’의 고상한 음악보다, 경기남부재즈의 연주가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 보인다.
『어른이』의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사운드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임태웅의 보컬은 계보 짚기가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보컬의 접근이 ‘자기 소리로 노래하기’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하다. 서도소리를 익히면 꽤 도움이 될 텐데, 어느 영역이든 기성의 어법엔 매력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김수유의 기타와 오원석의 베이스는 밴드 사운드의 핵심이다. 호흡이 매우 좋고 재즈적인 관점에서도 상당히 독창적인 연주와 톤을 들려준다. 둘은 록 밴드 스테레오버블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여러 팀에서 탁월한 다이내믹의 운용을 과시해온 한인집과의 라이브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경기남부재즈가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만큼 섬세하고 잘 짜인 연주를 들려주는 건 아니다. 이건, 밴드가 출발선에 섰을 때부터 우려됐던 ‘위악(僞惡)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메시지와 지향을 충분히 드러냈음에도 종종 과도한 연출을 펼친다든지, 솔로의 효율성을 간과한 채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는 욕심도 보인다. 다양한 무대에서의 라이브를 통해 힘을 주고 뺄 타이밍에 대한 감각을 체득해야 한다. 곡들 대부분이 원테이크이거나 그에 상응한 결과로 만들어졌으리란 심증을 생각하면 이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이단아의 위치를 점유하며 관심을 모았던 경기남부재즈에게서 어렴풋이 기성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건 유의할 부분이다. 그들 말처럼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건 이 밴드에게 큰 매력 포인트를 상실하는 것이다.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세월의 폭압적인 위력은 늘 주시해야 한다. 잠시 한눈팔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영혼을 집어삼킨다. 다시 앨범 재킷을 들여다보자. 그러고 보니 돌 사진에서 화사하게 웃는 아기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면 우리는 다가올 현실을 본능적으로 직시했던 게 아닐까.
경기남부재즈의 앨범엔 늘 ‘안나’라는 곡이 실려 있었다. 이제 세 번째 ‘안나’를 만난다. 그 세 개의 ‘안나’를 순서대로 묶어 들으니 아주 멋진 미니앨범이 된다. 어린 밴드가 어른이 돼 가는 슬픈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꼭 이렇게 들어보길 권한다.) 사실 안나에겐 남은 삶이 아주 많진 않을 것이다. 안나는 임태웅과 함께 사는 열네 살의 노견이다.
(2021년)
★★★
ps. 2022년 현재 경기남부재즈는 이제 하나의 밴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메시지는 또 다른 젊은 밴드와 연주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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