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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댓글 0건 조회 1,368회 작성일 202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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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Like Water』(2021)

2021년 세 앨범이 그린 물에 관하여

  • 정병욱
  • 22-10-08 17:36

드뷔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을 음악에 담고자 대표 이미지로 물의 인상을 차용해 다양하고 미묘한 음의 조합과 불규칙한 프레이즈를 완성했다. 주제 측면에서 생각할 때 가요 속에 물의 이미지는 자주 거룩하고 숭고한 무엇이어 왔다. 양희은의 「아침이슬」(1971) 속 이슬이 고요하게 긴 밤을 지새우며 지켜낸 민중의 시대정신과 순수성을 대변했다면, 한대수의 「물 좀 주소!」(1974)의 물은 절박하고 간절하게 강구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조동진이 동료, 후배들과 함께 생전 남긴 근작 중 하나인 『강의 노래』(2015)는 시대의 흐름과 변하지 않는 품위를 동시에 품으려 했다.


물의 개방성, 웬디 『Like Water』

‘눈물’과 ‘비’라는 변형체로써 물의 이미지를 차용한 「When This Rain Stops」의 은유는 ‘웬디’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활용한 제목의 언어유희까지 포함해 가사 자체에 특별히 신선한 감각이 엿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 건반 위주의 단출한 코드 연주와 반복되는 단단한 타건 만으로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비의 하강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나 이를 기반으로 가창자의 다채롭고 섬세한 보컬 테크닉과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효과적으로 과시했다는 점은 분명 언급할 만한 영리한 방식이다. 무엇보다 불의의 사고로 1년 반 가까이 활동 공백과 재활을 견딘 가수가 복귀작이자 솔로 데뷔 EP 첫 곡에 “마음에 비가 내려도” “이렇게 가끔은 멈춰가도 된다.”라며 때마침 (코로나가 지배하는 현실에 발맞춰) 오히려 타인을 위로한다는 사실은, 평소 웬디의 캐릭터와 맞물리며 음악 외적인 스토리텔링의 힘을 발휘한다. 


첫 곡에서의 물이 극복하고 승화해야 할 ‘대상’이자 지난 ‘시간’을 상징한다면,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Like Water」의 물은 ‘너’와 ‘나’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주체’이자 회복의 ‘공간’이다. 생명을 품고 탄생하게 하는 양수의 구성체로서, “부서지는 듯” 파도가 “몰아쳐도” 결국 모든 것을 품에 안는 바다의 동의어로서 물이 품은 가장 긍정적인 속성 중 하나인 ‘시작’과 ‘회복’을 인유한다. 이에 따라 감싸 안는 인상과 공간감을 위해 자연히 기타 리프와 밴드 사운드, 스트링과 보컬까지 각 파트가 두루 서정적인 분위기와 따뜻한 음색을 유지하는 가운데 뒤에 들려오는 잔향에 신경 쓴 사운드 디자인이 설득력을 얻는다. 다소 노골적으로 에너지를 응집했다 폭발하며 후렴 구간으로 진입하는 서사는 작곡에 참여한 Anne Judith Stokke Wik이 앞서 태연의 「불티」(2019)에서도 선보인 적 있는 방식으로, 웬디 개인을 넘어선 SM의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완연한 R&B 트랙으로서 분위기를 색다르게 환기하는 「Why Can’t You Love Me?」를 잠시 지나 또 다른 시작의 순간을 ‘길’이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치환한 팝·록 트랙 「초행길」, 생애 최고의 친구를 함께한 과거와 앞으로 함께할 영원의 시간으로 담백하게 그린 「Best Friend (with 슬기)」에 이르면, 마치 물의 순환성을 염두에 둔 듯한 『Like Water』의 구조적인 대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이는 본 EP가 언뜻 회복 수단이자 재생 공간, 순환의 물질로서 물의 여러 성질을 아울러 주제로 차용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적잖은 인력이 작사, 작곡 및 콘셉트에 폭넓게 관여하는 기획의 산물인데도, 『Like Water』의 주제는 적당한 통합보다는 치밀하게 끼워 맞춘 관통의 관점으로 들여다볼 때 더 잘 맞아떨어진다. 고통의 끝과 연결된 새로운 시작, “서로 어깨를 기대고” “빛을 비추며” 위로하는 너와 나 등 모든 이야기의 근저에는 단절을 잇는 ‘소통’이 자리하며, 소통의 이면에는 생의 연장 공간으로서 어디에나 맞닿고, 누구나 품에 안는 물의 개방성과 포용성이 자리한다. 


물의 폐쇄성, 천용성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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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Water』가 물의 속성이 지시 가능한 주로 밝고 개방적 측면을 조명한다면, 『수몰』의 수록곡들은 물의 무게감이나 폐쇄성과 같은 어둡고 부정적인 면모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에게 물속은 “용왕님”이 있는 물 밖과 완전하게 구별된 공간이다(「수몰 (feat. 이설아)」. 댐 건설로 인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도시에 대한 기억을 ‘가둔’ 공간이다. 여기엔 어떻게도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스미고, 이 같은 거리감은 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노래에서도 소통 부재의 감각으로 연장된다. 친구들과 엄마, 아빠를 포함한 세상(「중학생 (feat. 임주연)」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너(「보리차 (feat. 강말금)」에게서도,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하는 하늘(「붉은 밤」)에서도 그렇다. 안과 밖의 강제적인 구분 혹은 시간의 절단이 곧 고립으로, 이 같은 고립이 흔한 죽음에 대한 인식과 은유로 이어지기 때문일까? 「어떡해」의 경우 경험할 수 없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어린 시절의 고민을 풀어 놓기도 한다. 물론 물의 이분법적인 공간 감각이 기능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물에 무게감에 짓눌려 가라앉는 까닭이다. 헤엄을 치거나 물 위로 떠올라 그곳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종종 취해온 무기력의 감각은 이내 뭍과 물을 자유로이 오가는, 그러나 “하늘에는 닿을 수 없는” 이야기 속 「거북이」에서 폭발한다.


흔히 간과하는 역설적 사실은 물 안팎 공간에 대한 완전한 이원화와 양자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의 절대화가 물속 세계의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밖으로부터 안을 혹은 안으로부터 밖을 보호하는 기능 역시 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물속은 세상과 단절된 이들의 휴식 공간이다. 이야기와 역사 속에서 상처받고 소외되었으며, 심지어 삶으로부터 유리된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그곳에서만큼은 평화롭게 머물기 바라는 상상 속 비현실적 세계다. 시종일관 무게를 견지한 가사를 읊조리면서도 결코 아름다운 선율과 자기 고백적인 어투를 놓지 않는 천용성의 노래에는 그저 연민이나 분노로 치환할 수 없는 가타부타 말없는 기도와 적절히 견딜 줄 아는 근기가 자리한다. 이는 주체에 닥친 불행에 자신의 죄의식에 마냥 옭아매지도 완전히 솎아내지도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식물원 (feat. 시옷과 바람)」처럼 적절히 섞여 들어간 속도감, 무게감 있는 노래에서 특히 그렇다.


물의 유동성, 『물의 순환 / THE WATER CY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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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야 할 것은 물은 전혀 답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중음악에는 굳이 그것의 상징이나 속성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표상으로서 물의 추상적인 감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현대판 드뷔시 또한 늘 있었다. 근래에는 일본 시고쿠(四国)의 바다를 그린 텐거의 『Spiritual 2』(2019), 흔들리는 수면의 이미지를 재현한 선한인간 「수면」(2020)이 그랬다. 지난해 『Like Water』, 『수몰』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레인보우99의 앨범 『물의 순환 / THE WATER CYCLE』은 제목 그대로 물의 순환 과정을 거대한 서사로 구성했다. 언뜻 물의 순환적 속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앞선 개방성과 관련 있을 것 같지만 본작의 순환은 이를 통해 추구하는 메시지나 내밀한 주제를 드러내기보다 있는 그대로 순간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동두천』(2019)처럼 장소성을 통해 구겨 넣은 가사 없이도 역사를 들추고 기록했던 그는, 이번 앨범에서만큼은 좀 더 편안하게 샘과 구름, 바다와 파도, 비(「내려오기 / RAIN」)와 공기(「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 ATMOSPHERE」 등 우리가 포착 가능한 모든 물의 감각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그렇다고 해서 『물의 순환 / THE WATER CYCLE』이 특정한 속성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앨범의 제목, 레인보우99가 사운드로 표현하는 데 주력한 물질성, 각 물의 형태를 대표하는 수록곡의 전체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바 본작의 물은 단순한 ‘흐름’(flow), 곧 유동(流動)의 이미지를 주요하게 차용한다. 물의 유동은 본래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치 변화로부터 출발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물질 이미지와 결합해 모습을 바꾸는 물의 형태 변화, 궁극적으로는 타이틀에 앞세운 제자리로의 회귀를 이끄는 물의 거대한 순환을 초래한다. 나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득 찬 곳에서 빈 곳으로 흐르는 물의 유동은 지상의 높이를 결정하는 수평선을 끊임없이 생성하며 모든 의식과 감정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이는 열리거나 닫힌 결정태가 아닌 비결정태로서의 물의 속성에 주목한 관점이자 쉽게 신비주의나 몽상의 음악, 명상음악으로 치부되는 앰비언트의 성질을 적극적으로 긍정한 결과이기도 하다. c25aa765a7772f944ad74e12caaf67b5_1665218015_6923.jpg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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